HOME  |  로그인  |  회원가입  |  관리자
작성자     송창섭 작성일자     2010-06-14 조회수     3841
제 목  
  소월과 함께한 태화강 여정
첨부파일  
 

소월과 함께한 태화강 여정

- 제1회 울산 태화강 울트라 마라톤 대회(2010 05 29-30)에 참가하여



  국밥을 한 그릇 가볍게 먹고 15시간에 이르는 긴 여정을 위해 장비를 점검했다. 배낭과 가슴에 번호표를 붙이고 깜빡이등의 이상 유무를 확인했다. 발부터 머리까지 몸 풀기를 하고 참가자 무리에 휩쓸렸다. 늦은 7시에 대회장에서 출발을 했는데 해가 길어 주위는 환했다. 강변에서 펼쳐지고 있는 낯선 진풍경을,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난간에 매달려 소리 지르며 구경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후미에서 진주의 황철용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조금씩 체온을 끌어올렸다.


  강변 둔치길은 가지런히 잘 정비를 해 놓았다. 시민들도 많이 나와 자전거를 타거나 천천히 달리거나 혹은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참으로 정겨워 보였다. 강의 주변 정경을 살펴보면서, 섬기는 자세로 자연을 다듬으면 그들은 인간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혜택을 베풀어 준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도심지를 가르는 물줄기는 이미 이 곳 사람들의 친숙한 벗이요 생명의 젖줄로 그 위상이 달라져 있었다. 사람의 따뜻한 손길이 자연과 조화를 이뤄 생동감 넘치는 강이 되었으니 이야말로 상생相生의 활동이었다.


  어둠이 소리 없이 내려앉으면서 태화강도 새로운 변신을 꾀했다. 가로등이 내뿜는 주황색 불빛과 인근 건물에서 토하는 다양한 색채의 불빛들이 흐르는 강물에 드리웠다.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경관에 잠시 넋을 놓았다. 사람들이 다툼 없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의 세계를 가리켜 도연명은 무릉도원이라 하였는데,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바로 여기가 그 별천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윤수일이 부른 노래 ‘태화강 연가’의 노랫말이 뇌리를 스친다. “바람이 불어오면 내 마음 외로워 / 그리운 그대 곁에 추억이 돼 버린 / 예전에 다정했던 순간들도 이제는 꿈 되어 사라지고 / 타버린 노을 되어 강물 위에 흐르네 / 아아 추억이 흐르는 태화강 연가”    


  삼호다목적광장을 스칠 때 신명나는 풍물놀이 공연으로 흥취를 돋워 준 분들의 노고를 잊지 못하겠다. 다리가 무겁다는 생각에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행스러운 점은 초행길이라 그런지 여러 가지 볼거리가 많고 이리저리 휘감아 도는 듯한 길의 구조가 참 아기자기하고 맛깔스럽고 재미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20킬로미터 지점에서 바나나 한 조각을 먹고 물을 마셨다. 뛸 때부터 나는 왼손에 물병 하나를 쥐고 있었는데, 마신 만큼 부족한 양은 관문에서 조금씩 보충을 했다. 지체 없이 다음 장소를 향해 팔과 다리를 내저었다. 스스로 판단하기를, 잠시라도 편안함을 찾는 것은 울트라 전사로서 취할 자세가 아니라 여겼다. 이미 길을 떠나는 순간부터 나는 수도자나 고행자의 신분이 된 것이다. 고통이 따른다고 하여 이를 고통이라 여긴다면 구태여 달릴 이유가 없으리라. 넘기 어려운 그 고통의 순간마저 즐길 수 있을 때 참된 울트라 전사로 되살아날 것임을 믿는다. 


  건너편 산 중턱을 바라보니 하얗고 빨갛고 파란 불빛들이 반딧불이처럼 너울너울 춤을 춘다. 무언의 질주가 보여주는 형상이다. 달리기 문외한의 입장에서 보면 한 마디 던질 만하겠지. ‘도대체 깊은 이 밤에 정신 나간 사람들 아냐.’ 뻐꾹새 소리, 소쩍새 소리가 적막한 밤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내가 길을 달리는 이유 중 하나는 길을 달리는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깨닫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체력과 정신력의 부족함을 일깨우고, 자만심에 치우친 삶을 바로잡아 주고, 자신의 생애에 처절하리만치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의 세계를 보여주고, 무궁무진한 인생의 다양성을 허물없이 제시해 주고, 작은 것에도 한없이 감동하는 순박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새로이 나아가야 할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이 모든 일련의 사태들이 바로 길을 달리면서 자문하고 자책하고 자성하는 가운데에 얻는 것이다. 길이 곧 스승이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살다 보면 가끔씩 단조로운 일상에서 탈피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산을 오른다든지 멀리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난다든지 술을 들이켜고 미친 듯이 춤을 춘다든지 등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차림표가 있다. 그 중에서 나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길 위로 나서는 방법을 거머쥔다. 나에게 새로운 영양소를 공급하고 활기를 불어 넣는 길의 마술을 나는 흠뻑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고독한 도가니에 용기 있게 밀어 넣을 수 있는 자만이 맛볼 수 있는 특미이리라.


  지금 내 머리를 밝히고 있는 저 달은 크기나 빛깔이나 밝기로 보아 소월素月이 분명했다. 밝고 하얀 달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만고만한 거리를 두고 주위를 맴돈다. 아름다운 밤 풍경을 온 몸으로 떠받들며 달린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다. 달리는 길 옆으로는, 잦은 홍수로 물이 범람하여 농경지 피해가 심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심은 대나무가 도열해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십리대밭이었다. 진면목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삼호 인도교를 건넌다. 이 다리는 여느 산의 고즈넉한 오솔길을 연상케 하며, 또한 사람만이 거닐게 되어 있어 마음을 위로해 주는 둥지 역할을 했다. 발바닥을 간질이는 포근한 감촉이 너무 좋았다.

  

  국밥과 김치를 허겁지겁 먹었다. 맛이 일품이다. 봉사하는 분들의 따스한 손맛이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피로에 찌든 다리를 일으켰다. 미안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리의 희생이 아니면 나는 길을 갈 수가 없다. 그 은혜를 어찌 다 갚으랴.


  아산로를 달릴 즈음 부산의 표종운님이 나를 앞질러 이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앞뒤로 눈에 띄는 주자가 한 명도 없다. 홀로 도로에 남아 허우적거리는 모양새가 쓴 웃음을 짓게 한다. 성내삼거리에서 꼴찌완주자의 정태은님을 만났다. 안부를 묻고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봉수대 고개 정상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창원의 스님 달림이를 만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구암마을에 자리한 봉사자들이 주는 야채죽을 단숨에 집어 삼켰다. 감칠 맛이 오랫동안 입 언저리에 남아 있었다. 출렁이는 동쪽바다의 먼 먼 수평선을 바라본다. 소나무 사이로 파도가 밀려와 바위에 하얀 포말을 쏟아내고는 사그라진다. 철썩거리는 소리도 그렇거니와 망망대해의 쪽빛 물결과 구름 틈새로 언뜻 비치는 여명의 눈망울이 심신의 피로를 씻어 준다. 기분 상쾌한 아침이다. 햇살이 얼굴을 때려 따끔거리는 맛은 있었지만 겨드랑이에 날개라도 달린 듯 무한 창공을 나는 자유새가 된 느낌이다.


  정자고개를 오른다. 참가자들 여럿이 걸어 올라간다. 체력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은 나였지만, 한번도 걷지 않고 꾸준히 앞을 보며 내달렸다. 걸음걸이와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정상을 지나 아래로 아래로 질주했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염려하면서 한참을 내려왔다. 이제 남은 거리는 5킬로미터 남짓했다. 태양이 내뿜는 열기가 점점 뜨거웠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지만 미련은 없었다.

  주로 안내자와 봉사자들이 거의 다 왔으니 힘을 내라고 격려해 준다. 결승점이 시야에 들어왔고 많은 사람들이 인근을 서성거렸다. 250리의 여정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 이른 모양이다. 대회 관계자와 자원 봉사자들의 세심한 배려와 희생심으로 무사히 완주했음을 깊이 감사드린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초심의 열정이 대회를 거듭할수록 빛을 발했으면 좋겠다.   


  달리기는 힘들고 고통스럽고 때론 역겹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좋아서 내가 즐거워서 내가 반해서 하는 놀이인데, 짜증내고 투정부릴 거라면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 멈추어 서면 된다. 두려움이 있다면 진정 무엇 때문인지 길의 늪에 더욱 함몰해야 할 일이리라. 



(시) 태화강 풍경


일상으로부터 일탈을 재촉하는 발끝은

지천으로 살아있는 스승과의 조우를 전제로 하지


새색시모양 수줍음을 타는 초행길


물굽이는 모롱이의

개망초 달맞이꽃 족제비싸리 휘감아 돌고

그 생소하고 낯설은 까닭에

마음은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도근거린다


아까시나무 사이로 푸른 면사포 슬며시 비켜 쓰고

담담하게 저녁 햇살 끌어안으며

꼿꼿이 흐르는 강 언저리 이목구비가

눈망울 시리게 아름다웠네


거대한 밝음으로 살아 꿈틀대는

창공의 저 서럽고 황홀한 소월은

밤하늘 저물도록 끈끈한 벗이 되어

달림이들의 멀고 험난한

길 사랑 고백을 차분하게 듣고 있네



거리(km). 소요 시간

10. 1:10:49

20. 2:30:18

30. 3:47:52

40. 5:03:00

50. 6:23:31

60. 7:56:29

70. 9:20:36

80. 10:44:56

90. 12:05:00

100. 13:25:20



휴대 물품 : 모자, 목수건, 긴소매, 반바지, 발가락 양말, 달리기 신발, 물병, 사탕 5개, 현금 11,000원, 휴대 전화, 배낭, 깜빡이등 2개(앞, 뒤), 전조등(페즐)

 
댓글쓰기
이      름
비밀번호
No | Subject | Name | Date | Hit
19 369번째 헌열하고 다음날 100km 도전 임종근 2010-06-17 5050
18 달빛 소나타..[8] 김유미 2010-06-16 4865
17 대회후기 많이 올려주세요 관리자 2010-06-15 4195
16 태화강의 메아리 구춘옥 2010-06-15 4576
15 두번째 울트라 도전기~~..[1] 이승우 2010-06-14 4270
소월과 함께한 태화강 여정 송창섭 2010-06-14 3842
13 순전희 그놈의 情 때문에!!!(마무리) 임순희 2010-06-06 3425
12 순전히 그 놈의 情 때문에~!!!!!(1편) 임순희 2010-06-06 3421
11 태화강 울트라 연가~~(3번째완주) 채수진 2010-06-03 3604
10 태화강의 불꽃놀이 오재홍 2010-06-03 3425
9 태화강 연가. 곽길용 2010-06-02 3259
8 울산태화강이여 영원하라..[57] 류창곤 2010-06-01 5438
7 동네 한바퀴가 전부였는데.... 정병철 2010-06-01 3292
6 길 떠나는 자 행복하여라 (태화강 울트라마... 박흥수 2010-05-31 3058
5 태화강 울트라여행 백형근 2010-05-31 3121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