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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흥수 작성일자     2010-05-31 조회수     3059
제 목  
  길 떠나는 자 행복하여라 (태화강 울트라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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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 있는 동안에는 자유롭고 세상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겨나 버린 내 발의 티눈(?)이 발걸음 시큰거리게 하고, 마음 질척거리게 하여 오랫동안 길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길은 사람과 다시 해후하게 하고, 추억을, 여유를, 희망을 새로이 갖게 하는 흡인력을 불어 넣어줌을 믿기에, 오월의 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오랜만에 태화강 물길 따라 십리대밭이 있고, 장엄한 느티나무와 숲을 따라서, 또 한편으로 농촌 마을 산길 따라, 어촌 마을 바닷길 따라 달릴 수 있는 울산 태화강 울트라 마라톤에 다시금 살며시 발을 디뎌 보려고 합니다.


거북이는 토끼보다 길에 대하여 할 이야기가 많다고 합니다. 저도 거북이 되어 천천히 느릿느릿 달려보려고 합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오랫동안 길 위에 서는 것을 잊어버려서, 너무나 긴 시간을 달려보지 못해서, 과연 완주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운동한 힘이 모자란다면, 밥벌이가 주는 그 지겨운 힘을 빌려서라도 달려보려고 합니다. 아니면,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꺼내어 사원소의 몸짓으로 끈의 파동으로 날아오른다고 하는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보려고 합니다.


음력으로 4월 보름날 즈음입니다. 禪房에서는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는 結制날입니다. 육신은 문을 걸어 잠가 외적인 고요함을 찾겠지만, 마음은 내적인 치열함을 찾아 나서는 노마드가 되겠지요. 이동과 머묾의 적절한 조화 속에서, 그 잠김을 통해서, 다시 솟아날 수 있는 힘이 생겨나리라 믿으며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울산 태화강 강변길을 달려 나갑니다. 깨끗하게 단장된 태화강변의 도로와 가끔씩 펄쩍 뛰어오르는 강물의 물고기를 보며 달리기를 시작하니 석양의 분위기가 주는 먹먹한 고요가 살아서 출렁거리게 만듭니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어두워지고, 서서히 저무는 풍경이 마음을 일으켜 세워 막연히 그냥 잘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공업도시 울산이 에코도시로 탈바꿈을 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태화강변과 지방선거를 맞아 소란스러워진 도심을 빠져 나오니 자연의 냄새(?)가 향기로운 울주 시골마을로 들어섭니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많은 울트라 런너들이 참가한 이번 대회이다 보니 길 위엔 붉은 깜박등이 일렬로 선을 잇고 조용한 시골마을이 개 짖는 소리로 시끄러운 가운데 쟁반 같은 보름달이 심야의 이 희한한 광경을 무심한 듯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태화강을 따라 개구리 울음소리 쏟아지는 농촌마을을 통과하는 전반부 50킬로 달리기가 연습하지 않은 것에 비해 상당히 기분 좋게, 중간에 만난 친구들과 사진도 찍기도 하면서, 잘 달릴 수 있었습니다.

점점 무성해지는 잎사귀마다 제 몫의 어둠을 안고 가만히 밤을 건너가는 나무들처럼 저도 가만가만 꾸준하게 그렇게 달렸습니다.


그러나 5CP의 중간 급식소에서 국밥 한 그릇 받아들고 먹으려니 잘 먹지를 못하겠습니다. 점심식사 때 오랜만에 하는 이번 달리기를 위해 조금 과하게 먹어, 저녁을 먹지 아니한 채 출발하였더니 가득이나 약한 위장이 탈이 나기 시작했나 봅니다. 그러나 에너지원 섭취 없이 장거리를 달릴 수는 없는 법이다 보니 억지로 먹긴 하였는데 속이 쓰려오고 컨디션이 엉망으로 변해 가기에, 십리 대밭 숲으로 휘어드는 보름달빛을 쳐다보기도 하고 강변에 심어진 아름다운 양귀비꽃을 구경하며 천천히 걷기도 하고, 달빛에 반사되는 태화강물을 바라보며 조금씩 달려보기도 하면서 처지려는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나름 애를 씁니다.


하지만 아산로를 따라 씽씽 달리는 자동차 소음과 울산만의 바닷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공장의 기분 나쁜 냄새가 달리는데 잠시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내 주전바다 봉수대 방향의 길로 접어드니 괜찮아졌는데 이제는 다리가, 몸이 자꾸 쉬어 가자고 보챕니다. 아무래도 연습부족으로 인한 후반부에 뒤처져질 것을 염려해 전반부에 나름 열심히 달린 것이 오버페이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 하나 구입하였지만 부대낀 속이 거부하여 절반도 먹지 못하고 이내 나옵니다.


그렇지만 내가 달려가야 하는 길은 목적지가 그 길을 만드는 것이겠지만, 등짐도 한 몫 하는 것이라서 지고 있는 배낭 무게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모두 내려놓고 최대한 가볍게 가야 하나 봅니다. 흐르는 것들은 모두 무거운 것을 줄이기 위한 것들이라고 하니까요. 또한 우리가 흘러가야 하는 길은 가깝게 질러 통하는 지름길이라기보다 에워서 굽이굽이 돌아가는, 찬찬히 사유하고 감각해야 하는 에움길이여야 한다고 하니까요.


그렇게 가볍게 달리려고 애를 쓰다 보니 새벽을 낳은 주전, 정자마을의 바다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다는 푸르고 투명한 파도소리와 함께 다시 또 기력을 회복시켜 줍니다. 이번 대회는 달리기 친구들이 많이 참여해서 도중에 만난 친구들로부터 매실특효약도 얻고, 조용한 아침 바닷가를 배경으로 같이 사진도 찍어가면서 새록새록 추억 하나 더해진 대회입니다. 친구들이 가게 앞에 앉아 잠시 쉬어가자는 것을 뒤로 하고, 한발 한발 갑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정해진 시한 내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멀리 서울서 온 두 친구는 자주 주로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같이 끌어주고, 밀어주고 사이좋게 잘도 달립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며, 늙어가더라도 언제나 청춘의 봄날로 젊게 살아가며, 마음속 욕심 모두 몰아내고 스스로 평온한 마음으로 자기 인생을 사랑하며 살아야 함을 이 길 위에서 또 느껴 봅니다.


이번 대회에서 제일 고저도가 높은 정자 고개를 혼자서 넘어 오는데, 간간히 들리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아득한 고적감을 더해 줍니다. 아울러 딱따구리 소리도 딱따그르르 숲의 고요와 共鳴합니다. 마치 그 소리가 얼마 남지 않은 나머지 남은 길을 잘 달려가라고 환하게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르고, 계절의 여왕 5월의 푸른 끝자락에서 길은 또 다른 길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우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라고 말합니다. 이대로 땅 끝까지 갈 수 있다면 그 모든 길, 얼마나 등불처럼 환하겠습니까.


잘 다듬어진 강변 조깅코스 따라 종착점에 도달하여, 기념촬영도 하고, 목욕탕에 들어서서야 위경련이 일어나 잠시 널브러져(?) 친구들과의 뒤풀이에도 참석하지 못한 것과, 겨우 집에 도착하여 점심도 거르고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헤맨 것을 제외하고는 또 한 번 길 위에서의 소중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다음에 나는 나를 데리고 또 어디로 가야 할까요, 길은 누구에게나 물음일 수 밖에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대회를 위해 밥상을 차려준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길 위에서의 14여시간 동안 자유로웠음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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